뒤늦게 베테랑 2를 보았습니다. 장단점에 대한 평론도 듣긴 했지만, 그런대로 장점이 많다는 정도와 1편과 같이 선, 악에 대한 선명성을 내세우지 않고 새로운 관점으로 시도를 했다는 점은, '범죄도시' 시리즈와 같은 획일성에 대한 비난에서 자유로와 보였습니다.
저의 한줄 평은 제목과 같이
'해치'가 '해치'답게 했더라면 보다 좋지 않았을까 아쉽다
각자 영화를 보는 목적은 다르겠지만, 가능하면 재미있고, 뭔가 감동이나 의미를 남기고 싶은 2가지 모두 충족되면 가장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베테랑은 현재 매겨진 8.3이라는 점수처럼 우등하다 할 수 있습니다.
1. 액션에서 보여주는 육중한 타격감과 위트
워낙 류승완 감독이 액션에 진심인 분이시죠. 그의 출세작이자 데뷔작이었던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보여준 액션은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성룡 영화에서나 보던 그런 장면들을 한국의 독립영화에서 구현했으니 말이죠. 그것도 직접~.
거기에 베테랑 2는 흔히 게임에서 표현하는 타격감이 아주 강렬했습니다. 효과음을 살짝 무겁게 넣어주신 것 같더라구요. 쿵쿵하고 울리는 육중한 저음과 쾅쾅 부딪히는 고음이 주고받는 액션 하나하나가 오감을 자극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소 위트 있는 모습들도 놓치지 않으셔서 액션의 재미는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무조건 치고받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죠?
2. 사이버 렉카 문화, 정의에 대한 물음
전 솔직히 사이버 렉카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알게 되었는데, 사고만 터지면 달려가는 레커차에 비유한 것이더라고요. 그러나 이미지는 꽤나 부정적이더군요.
이 영화에서 사이버 렉카는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모습은 솔직히 말하면 어떤 문제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비쳤습니다. 후원을 요구하고, 심지어 자신이 마치 해결할 수 있다며 남초적인 허세까지
그러다 선을 넘어 정말 범죄를 저지르기도 하니, 사고의 해결사라기보다는 사고를 더욱 키우는 역할이지 않을까 싶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언론이라는 대중매체가 아니면 전해지지 않는 여러 갈등을 노출시켜준다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만 하다고 단정하긴 어렵네요)
여기에는 '정의'라는 큰 축이 있습니다. 베테랑은 경찰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큼 법을 수호하는 역활을 하죠. 하지만 1편과 달리 2편에서는 범죄자를 보호하는 역할 또한 보여주죠. 정의의 수호자가 범죄자를 보호한다?
그리고 빌런으로 나오는 일명 해치, 우리에겐 '해태'라는 이름이 더욱 친숙하죠. 롯데하면 껌이던 시절, 해태도 껌 좀 씹었죠. ^-^)/. 실제로 제과회사 해태의 회사 마크도 '해태'입니다.
이 영화는 빛과 어둠의 선명성을 버리고, 이 시대가 가진 보다 입체적인 문제로 한발 내딪습니다. 사실 그 모든 시작은 '법'의 한계성과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시작됩니다.
법이란 서로 합의한 일종의 규칙 같은 것이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법도 복잡해졌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입장차이가 있다 보니 우리는 사법기관을 통해서 '법'을 전문가에게 맞기게 되었는데, 이 판결이 보편적인 범주의 생각 - 즉 상식을 자꾸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의 불안전성이 존재합니다. 일단 누군가의 인생을 누군가가 평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 받은 이들이 법을 어기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세상의 점수가 된 지는 오래지만, 또 하나의 축이었던 명예, 선함과 같은 정신적 기둥이 바스러졌죠.
결국 법이 법 답게 작용하지 못합니다. 심신 미약이란는 법 조항은 인간의 행위와 정신을 별도로 분리해서 결과를 해석하는 것이죠. 술을 먹고 정신을 잃고 저지른 육체를 그런 논리로 처벌하자면, 동일하게 심신미약 상태로 만들고 그 육체가 저지른 죄만큼 동일하게 가해를 하는 것이 정당치 않을까요?
등가의 법칙에 어긋난 판결, 그것으로 속죄가 되듯 출소한 사람은 이제 범죄자가 아닌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 되는 것이죠. 그러나 피해자가 아닌 사회의 기득권의 삶을 살아왔던 이들이 행하는 법에 얼마의 눈물과 얼마의 아픔이 있을까요?
해태는 부정한 관리를 잡아먹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누구를 죽인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죠. 요즘 법치의 관점에는 그러합니다. 그런 관리가 지닌 영향력은 큽니다. 그러니 그가 규칙을 어기는 것은 한 개인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죄의 무게는 죽음, 그것도 해태의 먹이가 되는 고통에 상응하죠
자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유의하시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다양한 질문,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질 만한 자격이었을까?
해치로 나오는 전석우, 그는 스스로를 해치라고 한 적이 없다고 몇 번이고 말합니다. 이 말은 그가 정의를 구현한다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지만, 그것은 일종의 구실이며, 사실상 해치는 살인을 즐기고, 스스로의 강함을 뽐내고 싶은 유형의 인물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오히려 악당이 황정민 씨가 맡은 서도철 형사 같았습니다. 자신의 자식이 학폭을 당하고 있는데도 그가 아버지로서 보여주는 모습은 무관심해 보입니다.
그리고 자살소동으로 119가 출동하던 상황에서, 그가 보여준 아들을 대하는 모습(머리채를 잡고 끌고 나가려는)은 그가 평소 어떤 식으로 아들을 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었죠. 사회의 나쁜 놈을 잡는 히어로 같은 형사일지는 모르지만, 과연 그의 가장이란 범주에서는 어떨까요?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학폭위가 열리기 전, 교실에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저는 여기에 감독이 관객에 대해 TRICK을 사용했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여러분, 결국 사이버 렉카의 이용자는
여러분이십니다.
증명해 볼까요?
누가 누구를 때렸는지 불명확한 상태, 하지만 약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한 상대방 부모의 모습에 솔직히 가해자가 서도철 형사의 아들이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습니다.
기존의 매체들이 보여주던 가해자 학생의 부모들은 염치는 바위에 때어다가 널어둔 것 같았으며, 오히려 더 큰소리로 당당한 모습들을 보여주었죠. (특히 이런 장르의 영화에서는 더더욱)
그러나 베테랑 2의 가해자 부모는 한없이 약해 보이고, 억울해 보입니다. 감독이 트릭에 넘어간 우리는 결국 정의랍시고 문제가 발생하는 곳에 나타나 '후원해 주세요'라고 외치는 이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소비자가 언제든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뭐 벌써 후원자과 소비자일수도 있겠죠. 즉, 우린 좀 더 면밀히 전후사정을 보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쪽저쪽으로 사고하지 않습니다. 그저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정보에 의존하며, 선과 악을 구분합니다. 그리고 그나마 행동하지 않고 방에서 입으로만 분노하는 양심의 가책을, 사이버 렉카의 영상을 보며 보상받습니다.
정의부장 TV를 운영하는 1편에 나온 박기자는 이름하나를 바꿔서 뇌물 받아 잘린 언론인에서 정의사회 구현을 하는 사람으로 탈바꿈을 합니다. 그는 가짜 해치를 만들었고, 그 해치가 잘 도망가기 위해 후원이 필요하다고 외칩니다 - 전혀 상관관계가 없지만, 대중은 최면에 걸린 듯 후원을 합니다.
이 영화는 정의가 어떻게 악이 되었는지를, 악이 어떻게 정의가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건 사실 다수의 무관심과 방관에서 출발합니다.
사진이나 찍어 대는 대중들
이 영화 속 가장 정의로왔던 장면은 폭주족 12명을 차로 밀어버리는 민강훈(안보현 분)이 아니었을까요? 법은 그들에게 죽음으로 죄를 묻지 않을 테지만, 자신의 행동들이 누군가를 죽게 만들었죠.
그렇습니다. 법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어떤 범죄에 있어서 동기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며, 결과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았을 때와 나쁜 의도가 좋은 의도를 낳았을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는 명확한 답이 없습니다.
그저 그 시대의 목소리와 다수의 판단에 맞길 밖에요. 그리고 그것을 사법부에 일임하고 있는 만큼, 그들은 법전의 규칙 안에서 그것을 반영해야 됩니다. 그러나 그 역할에 대해 솔직히 저는 방임과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법부에 대해 대중은 사진이나 찍고 있는 것이죠. 주인이 제 곳간을 열어두고 도둑질당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죠.
4. 돌덩어리 해치가 살아 움직이도록
이 영화 속 해치가, 좀 더 해치 다 왔다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훨씬 강렬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국 해치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어기고, 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선택도 합니다. 결국 그는 살인을 좋아하는 일종의 허세꾼이었죠.
물론 주인공을 부각하기 위해,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러한 선택을 해야 했던 스토리를 이해하지만, 그 또한 너무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객관식 문제풀이처럼 마무리되어 버린 영화 속의 정의는 그저 그 수준에서 밖에 이야기할 거리가 없어 보입니다. 여러 좋았던 장치들이 좋은 보기를 제시했으나, 답은 몇 번. 끝~
그러나 세상의 정답은 없습니다. 대중 언론들 마저 직장인으로 전락하고, 권력자에게 스토리나 만들어주며 줄 닿기에 바쁘고, 그런 사람들이 출세하는 세상에 누가 누구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 고민 해본다면, 희망이 없진 않을 겁니다.
돌덩어리 해치가 살아서, 이른바 사회지도층과 권력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들 스스로가 다수의 국민들에게 같은 잣대를 이야기할 것이며,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 가겠죠.
돌덩이 해치가 움직이려면,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즉, 당신 한 사람의 힘이 모이고 모여, 해치는 살아 움직이지 않을까요?
단순히 살인마 해치로 마무리해버리고, 라면 한 그릇 먹으며 그 수많은 일들을 급 해피엔딩으로 끝내버리는 결론은 큰 아쉬움을 남깁니다.
영화 베테랑 2였습니다.
◇ 이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들은 네이버 영화를 통해 공개된 사진을 사용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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