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나라

이슬람 세계의 시아파, 수니파

9oC 2024. 11. 13. 14:28

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종파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뉴스 상으로도 포스팅의 제목인 시아파, 수니파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파편적으로 듣다 보면 이 종파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정확히 구조가 보이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그렀고요. 하지만 중동의 여러 국가, 특히 이슬람을 이해하는 데는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럼 시작해 보겠습니다.

 

1. 왜 종파가 달라졌는가?

종교라는 것이 같은 신을 믿으면서도 각각의 교리의 해석에 따라 정말 무수히 많은 파벌로 나뉘어집니다. 정말 사소한 부분도 있는데, 이슬람도 크게는 시아파, 수니파로 구분되지만 그 외에도 여러 종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만 같은 경우는 '이바디파'라는 소수 종파가 다수입니다.

 

그러나 크게 묶어 수니파, 시아파로 구분이 되죠. 그럼 왜 이런 차이가 생긴 걸까요? 이건 14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32년 이슬람의 지도자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고 그만 죽게 된 것이죠.

 

그래서 누가 진짜 후계자인가?를 놓고 견해가 달라집니다. 일단 다수의 수니파 (빼어날 수, 숫자 수로 많다, 다수다라고 외우시기 바랍니다)는 칼리프가 후계자라고 주장합니다.

 

칼리프는 대표자를 이야기 합니다. 즉 이슬람의 종교 지도자인 것이죠. 가톨릭으로 비교하자면 교황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슬람에 대해서 몰라도 수니파의 주장이 맞는 거 같은데.... 시아파의 주장은 뭘까요?

 

소수인 시아파는 '알리'가 후계자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알리는 누구일까요?

 

2. 결국 기득권과 저항세력의 주도권 싸움

세계의 모든 역사에 있어서 국가의 전복에는 항상 신진 세력이 존재합니다. 마치 고려말 신진사대부와 같은 존재들. 시아파가 후계자라고 주장하는 '알리'도 결국 4대 칼리프였습니다. 그럼 수니파랑 다를 게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알리는 쿠테타로 인해 암살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 쿠데타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알리가 정통성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쪽이 시아파입니다.

 

이에 반해 수니파는 좋은 게 좋다는 쪽이라고 해야 할까요? 흘러가는 역사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 사실상 넓은 의미로는 견해차이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1400년 동안 대체로 이 두 종파 간에는 비교적 평화로운 관계를 가지고 지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연산군이 쫓겨났다고, 진짜 왕은 연산군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죠. 물론 연산군은 폭군이었기에 그를 추억하는 당대 세력들은 없었지만, 어떤 이들은 왕의 정통성을 가지고 '중종반정'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시아파라고 보면 될 겁니다.

 

그러니 결국 기득권이 된 쪽과 저항 세력의 주도권 문제인데, 이것이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싸움이 벌어지게 됩니다.

3.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중동이란 나라만 보았을 때 크게 두 개의 민족으로 나뉩니다.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북동아프리카 쪽까지를 '아랍인'으로 분류를 하고, 이란등은 페르시아 인입니다. 단순하게 이분법으로 나눈다는 것도 너무 일반화된 것이겠지만, 그들은 그렇게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사실상 이슬람의 다수인 수니파는 전체 교인 중 85%이며, 시아파는 15%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슬람 정부는 시아파가 더 많습니다. 즉 각 나라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수의 혁명적 시아파가 다수의 수니파를 지배하고 있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슬람 세계의 그 수많은 무장단체는 '시아파'일 것 같지만 오히려 '수니파'가 더 많습니다. 그 유명한 '알카에다'도 수니파 조직입니다. 즉 시아파, 수니파의 갈등에는 근본적으로는 아랍과 페르시아라는 인종분쟁의 요소가 있습니다.

 

이란은 페르시아인이며, 그 이웃한 이라크는 아랍인입니다. 근본적으로 다수의 수니파가 대부부의 나라를 지배했었습니다. 이슬람을 단순히 중동이라는 지정학에 대입하면 안 됩니다.

동남아, 특히 인도네시아의 경우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며, 이곳은 당연히 수니파가 다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이 종파 문제로 인해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는 곳은 중동이죠. 자 그러려면 페르시아 민족의 후예인 이란의 역사에 대해서 먼저 조금 알아야 합니다.

 

4. 시아파의 맹주 '이란'이 된 이유

이란은 과거 '페르시아 제국'이 그 뿌리이며, 더 고대로 들어가면 '아리아'민족이라는 유목민의 나라입니다. '이란'이란 이름도 아리아 사람이란 뜻에서 가져온 것이죠.

 

이들은 인도에도 엄청난 영향을 주었습니다. 인도는 아리아인이 '강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Hindia라고 불렀던 것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서 아리아인은 H가 묵음으로 인디아로 발음했던 것이죠.

 

그 당시 그들이 인도인에게 얼마나 발달된 문명이었는지를 대표하는 것이 마차의 '바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명상 같은 것을 할 때 '차크라'라는 용어의 기원이며 이는 카르마의 윤회사상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왕정 국가였던 이란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석유의 개발등으로 열강을 상대로 이익을 얻었고 특히 미소냉전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미국 친화적인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나 그 막대한 부를 일부 왕족과 그 세력들에 집중되었으며, 오히려 민중의 삶은 피폐하고 파산 직전까지 몰려갔었죠.

결국 이런 불만은 혁명을 불러왔고, 국왕은 이집트로 도망치고, 1979년 추방되었던 시아파의 종교 지도자 '호메이니'가 돌아왔고, 삼권이 모두 이 한 사람에게 쏠릴 만큼 막강한 신정국가체계이면서도 대통령이 존재하는 공화정치의 기묘한 하이브리드 체계를 가지게 됩니다.

 

이로써, 이란은 시아파의 중심국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호메이니는 단순히 자신이 이란의 정치 중심이 아닌 이슬람의 중심이 되길 원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등에는 제국주의 유산을 계승하지 않는다는 그의 정치이념이 눈에 가시였을 겁니다.

 

5. 기득권 세력(수니파인 지도층)의 진보세력(시아파)에 대한 탄압

앞서, 이슬람 인구 중 85%가 수니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전체 이슬람 국가 중 40개국 정도가 수니파이며, 다수는 시아파입니다. 이 말은 소수의 시아파가 정권을 잡고 수니파를 다스리는 곳들이 많다는 것이죠.  

 

앞서 호메이니의 집권은 왕권의 지배 세력 아래 놓인 민중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기류를 기존의 국가나 종교 지도자들이 맘에 들 리가 없었죠. 결국 그들은 진보세력인 시아파에 대한 직접적 탄압이나, 혹은 수니파 중심의 테러 세력을 지원해 주는 방법으로 탄압을 가하기 시작합니다

결국 1980년 이란의 이웃국가였으며 당시 수니파 정부였던 이라크의 후세인은 정유시설등을 공격하며 시아파에 대한 직접적인 무력 행동을 취합니다. 또하 이라크 내부의 소수의 시아파에 대한 탄압도 단행이 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런 기류에 반전의 계기를 만들어 줍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대한 게릴라 공격에 대한 방어라면서 1982년 레바논을 침공해 버린 것이었죠. 이로 인해, 최근 전 세계인이 알게 된 '헤즈볼라'가 탄생하게 됩니다. 이들은 최초의 시아파 무장단체였죠.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아래 남부에서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였죠. 이것은 이슬람 대 반이슬람의 전쟁으로 '내부'의 문제가 외세의 문제로 확산되며 이란에 대해 무시할 수 없는 명분을 만들어 주었고, 이로 인해 완전히 시아파의 맹주로의 지위를 가져다줍니다.

 

결국 이것을 계기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바레인, 예맨등의 각국의 소수인 시아파가 정권을 차지하고 확고히 하는 계기가 됩니다.

 

6. 후세인의 몰락, 최초의 시아파 아랍국가 탄생

시아파와 수니파의 분란은 사실상 누가 후계자인지를 따지는 종교적 성격이라기보다는 다수의 기득권과 소수의 혁명 세력, 그리고 그 사이에 종교 정치적인 권력 다툼이 국가 간의 이슬람 패권 다툼으로 번진 것으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겁니다.

 

그리고 이런 분란의 뒤에는 미국과 소련등의 개입으로 석유 자원 확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국 미국은 2003년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을 하고 있다는 '심증'만으로 바그다드를 폭격하죠. 뭐 물론 그 이전에 쿠웨이트 침공으로 벌어진 걸프전쟁의 연장이었죠.

 

결국 이라크의 수니파 정부였던 후세인을 몰아내고, 이라크는 아랍 국가 최초로 시아파 정부가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리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와 이란 중심이 시아파의 대립 구도가 완성되었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는 반정부 세력이던 당시 시아파 종교지도자를 숙청해 버리는 일로, 이란과 완전히 대립각을 형성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외교단절 상태입니다.

 

결론, 국민이 똑바로 정신 차리자.

비교적 평화로운 우리나라, 그러나 보수 성향을 대변한다는 미명 아래 극우인 태극기 부대나, 엄마 부대 같은 어떻게 보면 반국가적이며 반상식적인 집단에 돈이 흘러들어 갑니다. 돈이란 게 참 무섭죠? 자신의 이념과 상관없이 목소리를 내게 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조직에 녹아 납니다.

 

인간은 스스로 합리하는 방어기제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납득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적절한 변명거리를 찾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보수'는 '극우'가 되어버립니다. 상식적인 분들이 비상식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죠.

 

그런 노인들에 대한 비하발언은 결국 다시 노인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가게 되고, 그런 시선은 반발로 작용하죠. 그래서 민주투쟁의 한 역사를 차지했던 1987의 주인공이었던 70대들이 오히려 이 말도 안 되는 보수 정치를 만든 장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젊은 이들은 어떤가요? 이준석이라는 양두구육의 주인공, 이 정권을 만든 주역이 몇 마디 각을 세우는 것 만으로 마치 반정부투사라도 되는 듯 언론을 빌려 목소리를 내었고, 그들의 아픈 곳을 찔러서 표를 얻어 내었죠. 젊다고 모두 개혁적이지 않습니다. 청소년이라고 미래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아이라고 순수하지도 않죠.

 

물론 어른의 책임일 겁니다. 그러나, 그 책임의 절반은 그들의 몫입니다.

 

정치는 그렇게 사람을 조종합니다. 스스로 깨어있는 시민이 되지 않으면 그저 언론에 나와 있는 몇 줄의 기사로 쉽게 누구를 평가하고 누구를 비난합니다. 그 목소리가 일관되었는지, 거짓말은 아닌지, 달콤한 말로만 떠드는 사람은 아닌지 생각하기 귀찮은 것이죠.

 

중동의 역사를 보며, 그 피비린내 나는 정치의 중심에는 권력을 탐하는 이들과 그들을 지원해 주는 강대국의 이익이 있었습니다. 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과 자국 국민에 대한 사랑이 먼저였다면 비극은 훨씬 적었을 겁니다.

 

신념 없이 누군가의 준동으로 주인의식 없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는 이들에게도 그에 합당한 '업장'이 돌아갈 것입니다. 왜냐면, 그 피해는 모두 함께 겪는 것이기 때문이죠. 생각만으로도 죄를 짓는다 했습니다. 하물며 행위에 대해 어찌 죄가 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주권자인 국민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아니면 이 나라가 싫다면 떠나셔도 됩니다. 누군가는 남겠죠. 그리고 누군가는 살아갈 겁니다. 그럼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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