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보고 듣고

모닝 루틴 2.

9oC 2024. 11. 18. 20:18

자 천억을 벌면 어떻게 사시겠어요? 시각화 하지마세요!.. 그렇게 살아버리세요. 온통 뭐 가지고, 어디가고,  그러실 건가요? 천억을 가진 사람도 일상이란게 있는데...

 

자 상상력이 부족한 저는 시각화 능력이 부족해서 그냥 그렇게 살기로 했고, 제가 바로 꿈꾸던 천억을 번 풍요로운 나의 삶을 실천하기로 했다는게 이 글의 요지입니다. 제 삶이 여러분의 삶과 다르듯, 본인이 원하시는 삶을 사시면 된다는 점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11월 15일은 귀차니즘과 동시에 영감과 기도로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이어가겠습니다.

 

저는 따로 각잡고 명상하는 것도 좋지만, 청소나 설겆이 같은 것을 아주 정성스럽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 또한 명상 이상의 에너지를 얻습니다. 하지만 아침에는 예의가 아닙니다.

 

저는 4시30분에도 일어나고, 5시에도 일어나고 6시 10분에도 일어나는데, 대부분 가족들은 아직 잠들어 있습니다. 제 자유를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 우린 그런걸 방종이라고 배웠죠.

 

그래서 가능한 이동식 스탠드를 횟불 들 듯 들고 움직입니다. 10년전에 한 행동 단위별로 한 2달동안 기록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나름 기호체계를 만들어서 프로그램을 돌려 분석도 해보았는데 크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결국 데이터를 통해 돌출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다는 패턴과 인과를 분석해서 교정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무의미한 기록들로 인해서 노이즈만 늘어난 다는 느낌이었죠.

 

해서 행위에 있어서 모듈화 시켰고, 핵심되는 것들만 시간과 행위를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목표를 남기고, 이룬 성과와 남겨진 것들을 인식하는 정도, 그 안에서 성취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여러 책들에 나와 있는 작은 성공을 경험하게 하는 구조입니다. 별것도 아니며 새로운 것도 아닙니다. 몰라서 안하는게 아니라 하지 않기 때문에 안하는 그것들입니다.

 

 

기억은 거짓말을 잘합니다. 인간은 맹점도 가지고 있고, 착시도 가지고 있습니다. RAS에 의해 의식하는 중요한 정보만을 취하고, 불필요한 정보는 망각하도록 구조화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은 중요한 부분입니다.

 

남들이 스마트폰을 쓰기도 전부터 저는 인적관리를 컴퓨터로 했습니다. 요즘같은 싱크기능이 없을때, 일일이 CSV 파일로 DB값들을 백업하고, 기록관리했습니다. 여러가지 시도 끝에 내린 결론은 아날로그의 힘입니다.

 

수많은 레퍼런스가 있다 한들, 그것이 내것이 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최소한 어떤 레버런스가 있다는 정도는 알아야만 찾을 수가 있습니다. 어떤 단위로 분류하는 것이 나은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각각의 장단점을 정리해둔 자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날로그 방식을 추천드립니다.

 

편리함이 좋은 이득, 효율도 인정합니다만, 틀딱이라 조롱하고, 쓸모없으며 번잡한 전통이 가지는 의미가 있습니다. 프랭클린 다이어리 같은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저는 맞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에버노트를 통해서 저는 13년치 이상 꾸준히 기록한 제 나름의 DB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때는 물건을 사면 영수증을 모두 촬영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10년전 너구리 가격을 알고 있습니다.

 

차계부의 경우는 2003년부터 기록을 했습니다. 2010년쯤 차량을 바꾸면서 Renewal 했지만, 여전히 메뉴얼상의 각 부품의 교체 시기와 권장 시기등을 연동시켜서 관리를 합니다. 비어 있는 데이터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채워넣어야 성격상 안정감을 가집니다.

 

그렇죠. 집착의 끝판왕 같은 완벽주의 성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고돌아 결국 얻은 것은 2013년 꾸준히 다이어리를 썼던 기억이 가장 좋았고, 실제로 아날로그가 가진 설명하기 어려운, 체험해야만 아는 그 거추장 스러운 물리적인 무게, 부피가 주는 가치, 시간을 들이게 만드는 기법에서 얻어지는 오감의 체험등

 

저의 단점입니다. 미사여구가 많다는 점. 결론은 다이어리로 쓰는게 젤 효과적이며, 행동교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 이 값을 얻어내기까지 제가 10년 정도 이런 저런 방법을 써봤다는 점. 나름 데이터의 신이라 불리었다는 점 정도른 살짝 자랑해보렵니다. ㅎㅎ

 

15일은 고구마를 먹으면서 어제 도서관에서 힘들게 빌린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법륜 스님이 쓰신 건데, 정말 경쟁률이 치열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도서관에서는 빌릴 수가 없더군요.

 

언제든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스윽 보고~ 꽂아두었는데... 그 이후로 만나질 못했습니다. 수능때문에 평소 나와바리가 아닌 도서관에 갔더니, 빙고!!!

 

너무 동시에 여러책을 읽고 있지만, 다행히 2권은 그냥 자연스럽게 틈틈히 읽으면 몇일 안으로 끝낼 수 있을거란 판단이 들었고, 내용이 좋아서 마음의 스승처럼 한번씩 찾아 읽을 것들인지라 구입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중입니다. 그러면 굳이 정리를.....안해도 되겠죠? 책에다가 마음껏 낚서가 가능하니깐.

 

여튼 해야 할 일들을 적고 명상을 합니다.

 

뇌호흡 명상은 간단히 머리에 위치한 백회,전정,인당,미간, 인중, 아문, 옥침, 태양 혈을 골고루 이름을 부르며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처음 제가 우울증을 겪었을 때 이 호흡법을 매일 했었습니다.

 

당시 뇌를 씻고 싶다는 생각을 할만큼 도저히 내맘이 내 맘데로 되지 않았을 때, 우연히 집에 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 실천한 것이죠. 그리고 그 당시에는 이 호흡만 계속 하다가 1시간 정도 무아지경의 체험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견성이라고 표현하던데, 당시에는 저는 그런 개념도 없었고, 깨달음이란 단어 역시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 그저 그 체험을 다시 한번 해보고 싶다 할 만큼 제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체험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억조차 나지도 않으며, 그것이 소위 깨달으시고, 도통하셔서 설법하시는 분들의 그것인지 확신도 없습니다. 인체라는게 LSD 같은 마약만 섭취해도 초월적인 경험을 합니다. 그럼 그것을 깨달은 자라고 해야하나요?

 

목졸라 죽는 이들은 어느 경지가 되면 고통에 대한 방어 기제로 뇌에서 도파민을 다량 분비시킵니다. 천연 LSD죠. 그걸 깨달은 것이라고 불러야하는 건가요? 그런 스너프 같은 이상 성행위를 부르죠.

 

아무튼 뇌호흡을 하고 나면 차크라 명상을 합니다. 이것은 조디스펜저 박사의 에너지장 명상에서 저 나름데로 착안해 온것입니다. 1부터 7번 에너지 장, 즉 차크라를 느껴줍니다.

 

실제로 저는 방금 말한 부위를 손으로 집어줍니다. 정확한 혈 자리를 인식하고, 상상으로 느낍니다. 호흡을 하면서 그곳에 에너지가 모이는 상상을 하는 것이죠. 

 

저는 신에 대한 한가지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 또한 가설이며 저의 사고 실험에서 창안 한 것으로 신은 빛입니다. 그러나 신이 빛이라는 한계된 존재는 아닙니다. 신은 만유죠. 모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란 그런 추상적 개념만으로는 허구를 창조해내지 못합니다. 개념은 개념일 뿐, 실체화된 허구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저는 그것을 빛으로 정했습니다. 증명해야 하나요? 침묵하겠습니다.

 

제게 신은 빛이며, 빛은 에너지이며, 이 에너지는 여러가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우리 인체의 7개의 차크라와 빨주노초파남보가 매칭이 되어 저는 1번 차크라부터 하나씩 과일을 떠올립니다. 딸기, 오렌지, 참외(때로는 바나나), 수박(또는 멜론) 이렇게 생식기, 단전, 위장(부신), 심장에서 에너지를 느낍니다. 숨을 들이쉬고 멈추고 그 부위에 근육적인 압력을 가합니다. 그리고 각 과일의 냄새, 촉감, 맛, 소리, 빛깔을 체험하고, 응축된 호흡을 풀어주면서 해당 스펙트럼의 파장을 온몸으로 퍼지는 상상을 합니다.

 

목은 파랑색으로 하늘을 떠올립니다. 신은 어느 곳에나 있고, 제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지만,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라는 저의 종교적 믿음에 따라 목이 하늘이며 저의 뇌와 백회에 해당되는 곳은 신의 영역입니다.

 

사실상 뇌와 그 너머는 해부학적으로 물리적인 기관이지만, 의식은 단순히 그 해부학적 지식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늘 위의 송과체, 백회를 각기 우주의 남색과 보라빛의 은하를 떠올리며 차크라 명상을 하면 결국 제가 빛이 됩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파장이 섞이면 결국 하얀 빛이되죠.

 

이 과정에서 저는 육체를 기계적 관점으로 접근합니다. 육체란 '참자아'인 내가 세상을 체험하기 위한 일종의 로봇같은 것이죠.

 

그리고 뇌를 한번 모두 관찰합니다. 좌뇌부터 전두엽, 두정엽, 후두엽, 측두엽, 편도체, 해마, 간뇌, 뇌량을 거쳐 우뇌로 넘어가서 같은 방법으로 쭈욱 인식을 해줍니다. 그리고 시상, 시상하부, 소뇌, 척추를 따라 온몸에 뻗어 있는 신경망들, 혈관들, 림프선등 전체적인 구조를 조망합니다.

 

저는 이것이 무의식이라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의식되는 부위는 뇌의 일부이지만, 무의식은 인식되지 않는 뇌의 섬유망부터, 온몸에 뻗어 있는 신경망들이죠. 근육 속에도 저는 기억이 존재하며, 원자 단위에도 의식이 있다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물론 이런 가설은 그냥 상상력은 아닙니다. 충분히 여러 책들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설사 그것이 착각이든, 망상이든 어느 패턴을 가진다면 적어도 모듈화 된 데이터로 인식하고)를 토대로 공통된 특징들과 의미들을 구조적으로 접근했습니다.

 

뿌리가 없이 줄기가 없고 줄기 없기 가지가 없으며 가지 없이 나뭇잎이 없고 나뭇잎 없이 열매가 맺을 수 없는 구조적인 연결성.

 

최종적으로 내 빛이 닿는 그곳과 하나임을 상상해봅니다. 하지만 여기서 체험으로 이르지는 못합니다. 여전히 상상의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시크릿, 마인드풀리스, 네빌고다드, 호오포노포노,EFT, 세도나 메서드등등 수많은 마음 수련의 모든 것을 몰랐던 시절, 내 삶에서 처음으로 기적을 체험한 시절로 돌아가 성모마리아 상에게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의 방법도 집어치우고, 무엇이 진짜 기도라고 내리는 정의도 잊습니다. 그저 우리 선조들, 할머니들, 정화수에 물 떠놓고 비나이다 하듯이, 온전히 신에게 기도합니다. 이것을 두고 이원성이라 어쩐다라고 주장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카톨릭 신자로 저 나름의 삶에 기적을 체험해보았기에 말이 아닌, 그 체험에 기대어 신과 대화할 뿐입니다.

 

작은 나는 한걸음 물러나며, 만유의 신께서 이 몸을 통해 신의 뜻 그대로 행하시길 기도합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햇살이 드는 창가로 가서 책을 봅니다. 15년전에 이마트에서 8천원 주고 산 캠핑의자에 앉아서 햇빛과 함께

 

아니 천억이나 벌었는데 8천원자리 의자라니!!!. 그게 어때서요? 천억이 아니라 1조를 벌어도, 쓸만한 물건을 버리는게 맞나요?

 

낭비를 하는 사람이 천억을 벌까요? 필요한데 쓰라고 돈이 있는 것이지 낭비하라고 돈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돈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생명입니다. 돌맹이도 살아서 움직입니다. 인간의 시간에서는 그것이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할 뿐이죠. 올바른 곳에 쓰여지면 됩니다.

 

자, 여기까지입니다. 좀 정돈되지 않는 느낌으로 적었습니다.  가끔은 찬물 샤워를 합니다. 매일 하는 것 아닙니다. 여러 실험 중입니다. 나에게 기쁨과 성취감과 깨달음을 주는 실천이 무엇인지 행하고 관찰합니다.

 

아이가 학교가면 태워주고, 도서관에 들려 자리를 잡고, 글을 씁니다. 업무의 시작이죠. 창밖 풍경과 도서관 속에 열심히 살아가는 에너지가 팍팍 느껴진답니다. 이 정도면 천억을 가진 자유로움에 필적하는 체험이지 않나요? 실제로 지금의 삶에 너무나 만족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