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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가 알려준 지혜_썩은 부분은 검은 곳이 다가 아니다.

9oC 2024. 11. 14. 20:31

얼마 전 삶은 고구마를 먹다가 왠지 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삶기는 과정에서 좀 타버린 건가 생각하고 넘어갔죠. 하지만 또 며칠 뒤에  생고구마를 먹다가 무척 쓴 맛이 느껴졌습니다.

 

베어 문 단면에는 하얗게 보여야 할 고구마의 속살이 거뭋한 빛깔을 띄고 있었죠. 그제야 저는 며칠 전 먹었던 고구마 역시 썩은 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반사적으로 입안에 있는 것들을 뱉어 내고, 손에 든 고구마 역시 버렸습니다.

 

그리고 박스에 보관하고 있던 (햇빛이 들지 않는 방에 잘) 다른 고구마를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썩어 있는 고구마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썩은 고구마의 특징은 일단 단단한 육질이 아닌 몰캉몰캉한, 마치 사람의 피부를 만지는 듯한 탄성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것들을 잘라내면 그 안에는 여지없이 검은 색의 빛깔을 띈.. 마치 멍이 든 것 같은 느낌이었죠.

 

하지만 남아 있는 몇 안되는 고구마를 고르다 보니, 비교적 많은 양이 썩어 있다는 걸 알고, 이거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부분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칼로 일단 썩은 부위를 도려내었습니다. 표면으로 느껴지는 말랑한 부위 속으로도 골병이 든 것처럼 상한 부위는 깊숙히 자리하고 있었죠. 어림짐작을 해가며 잘라내다 보면 이렇게 본래의 하얀 빛깔의 정상적인 고구마 색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잘라둔 것을 옆에 두고, 다시 다른 고구마의 썩은 부위를 한참 골라 내었습니다. 정상적인 것이 몇 되지 않더라고요. 그렇게 다 정리했다 싶어서 무심코 하나를 베어 물었습니다.

 

웩!!! 뭐야!

 

 

선명한 쓴맛, 그래서 보았더니, 방금 전까지 하얗던 고구마의 단면이 마치 물들듯이 조금씩 검게 변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죠. 설마...... 하는 마음에 다른 멀쩡해 보이는 것들도 씹어 먹어 보았습니다.

 

썩었습니다. 그리고 확실히 냄새가 달랐습니다. 멀쩡해보였지만 찌르는 듯한 향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더 깊숙이 잘라내고 도려내고 나니, 정상적인 향이 느껴졌고 맛을 보니, 썩지 않았더군요.

 

1.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불연듯 제 머리를 스치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이나 '현상'을 통해서 판단을 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차지하는 것이 시각정보죠. 그래서 눈이 천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은 뇌의 일부분이 진화했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실제 해부학적으로 우리 눈의 신경망은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진화론적으로 고생대 시절 눈은 그저 빛이 있다 없다 정도를 식별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이 되었을 거라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그 개체에게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었죠. 가령 자신보다 큰 생물이 위로 지나가면 어두워지는 것을 느끼고 위험의 신호로 인식 할 수도 있었고, 밤인지 낮인지를 구분함으로 사냥하기에 적절한 시간을 인지할 수 있었을 테니 말입니다.

 

즉, 진화적으로 생존하기 더 유리했으며, 점차 돌인 변이를 통해 빛의 감지 능력과 소위 해상도가 점점 발달했습니다. 이제 먹이와 적을 판단하고, 주변 환경까지 인식하는 단계까지 진화하기 시작했죠. 이것이 '눈'이라는 감각기관의 역사입니다.

 

자 그럼 보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언어학자였던 '소쉬르'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습니다. 이 분은 '구조주의 철학자'들의 이론적인 토대를 만들어주신 분입니다.

 

구조주의는 인간의 보편성에 의지하지 않는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인식에 대한 정의를 해석하려는 경향이었습니다. 솔직히 저 역시 온전한 이해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는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단지 이런 것입니다. 한국어로 '보인다'는 말은 영어로 see 일수도 있고, watch 일수도 있으며, understand가 되거나 judge의 의미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I see라는 말이 I understand와 유사하게 사용되죠.

 

소쉬르는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언어의 구조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고를 통해 행위까지 연결되는 것이죠. 이 낯선 언어학자를 알지 못해도 언어가 가진 구조적인 차이가 동서양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주는 사례들은 많습니다.

 

가령 어떤 생각을 영어로 하는 것과 한국어로 하는 것 만으로 같은 사람이 다른 결과를 돌출할 수 있습니다. 영어는 주체와 행위를 우선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는 구조를 띄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어는 주체를 없애도 누가 말하는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 그랬잖아 "라고 말해도 알아먹습니다.  그리고 실제 핵심을 이야기하기 전에 모든 디테일함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죠. 즉, 보인다라는 말을 가지고 이해는 하지만 과연 우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2. 불교의 다리니 경

불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도 다라니경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을 겁니다. 왜죠? 힌트는 석가탑입니다. ^-^

 

다 알아맞혔을 거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바로 무구정광대 다리니 경 때문이죠. 국사 시험에서 아주 중요해서 외우셨을 겁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죠.

 

불국사의 석가탑 보수공사 시 발견된 사리함에서 우연찮게 발견된 이 유물 덕분에 '세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이라는 목판 인쇄물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니, 이 어찌 아니 외울 수가 있었겠습니까만은.. 정작 그게 뭔지는 잘 모릅니다. 그냥 불경이다 정도이죠.

 

불경하면 뭐 떠오르십니까? 마하반야 바라밀다 정도면 조금 고급반이시고, 대부분은 그냥 나무아미타불 과세음보살로 전국통일이지 않으신가요? 교회에 안 다니신 분도 아멘, 할렐루야 정도는 알고 계시는 것처럼.

 

다라니경이란 것의 정확한 의미는 번역 이야기를 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어느 기독교 종파가 나뉠 때 성경구절의 해석을 가지고 이게 맞다 저게 맞다는 의견차이로 국내의 어느 소수 종파가 나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학시절에 들은 그 이야기에 당시 딱히 종교를 갖지 않던 제가 들어도 어이가 없었던 것은 한국어 성경 구절을 가지고 시시비비를 논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어떤 언어로 쓰였나요? 최소한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닙니다. 정확히는 히브리어로 쓰인 것이 다수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는 다양한 언어로 써졌습니다.

 

우리는 '사과'를 들으면 먹는 과일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에게 잘못을 구하는 사과도 동시에 떠오릅니다. 즉 언어라는 것은 번역하는 과정에 있어서 오역될 수 있으며, 핵심을 놓치거나 뉘앙스를 비켜갈 수 있습니다.

 

가령 제가 "여러분 여기 사과요."라고 말한다면 앞 뒤 문맥을 봐야만 정확히 어떤 사과인지 알 수가 있죠. 그러나 정말로 사과를 주면서 사과를 할 수도 있습니다. 유명한 '개사과' 아시죠? - 어이쿠 민감한 부분이니 재빨리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니 한국어 성경을 두고 하나님 말씀은 이게 맞다 저게 맞다고 한다는 자체가... 어이가 없는 짓이죠. 그런데 생각 외로 그런 경우들이 많다는 사실 - 주로 사이비가 그러합니다 -

 

불경이란 게 어디서부터 출발했겠습니까? 인도죠. 그리고 인도에는 인도어가 없습니다. 공식적으로 힌디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정해놓았지만, 그건 니 생각이고가 인도의 여러 지방의 의견입니다.

 

위의 지도가 그나마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를 지도로 정리해 둔 것입니다. 즉 저것보다 더 많다는 것이죠. 민족도 그러합니다. 북쪽은 아리아 계통의 영향을 받았으나 남쪽은 아프리카 계열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무튼 중국이 여러 소수민족과 다수의 한족이라고 하지만, 인도는 다수의 다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부처가 살았던 기원전 500년(뭐 정확하진 않지만) 전으로 돌아가면 아무래도 더 심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불경의 대부분은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로 써졌습니다.

 

더 정확히는 부처 살아생전에는 어떤 기록도 없었으며 이것이 암송을 통해서 전파되었고, 언어가 도입된 이후 기록된 것이죠.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기록보다 더 정확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입니다. 사실상 기록은 왜곡될 확률이 크지만, 암송은 까먹을 망정 중간에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불경을 손오공과 삼장법사가 구해서 중국으로 가져가면 번역을 해야겠지요? 그렇게 한자를 통해 소리 나는 데로 음역 되거나, 동시에 그 담긴 뜻을 한자로 번역한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불경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은 참 헌명하셨다고 생각되는 것이, 단어 하나가 가진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는데, 붓다의 아주 핵심적인 말을 다른 나라 말로 바꾸면 소위말해 심심미묘법 (깊고 깊으며 아주 섬세하고 묘한 법)을 놓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다라니경은 한자로 번역되지 않은 소리 나는 데로 음역 된 경전입니다. 그러니 F와 P 발음의 차이를 글자로 구분시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어로 음역 되었기에, 실제 우리가 읽는 다리니 경 역시 원래 발음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소쉬르가 말한 인간의 사고의 한계가 언어의 한계에서 출발한다는 본질을 잘 알고 있던 것이죠.

 

3. 통증은 증상이고, 병은 따로 있다.

고구마를 통해서 저는 이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살면서 어딘가 아프면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만 사실 그 고통은 당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고 기침을 하며 열이 오르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자연면역체계가 보내는 신호입니다.

 

쉬어라!. 움직이지 말고 쉬어.

 

콧물이 나는 것도 체내에 침투한 병원균을 내보내는 과정이며, 기침도 같습니다. 발열은 우리 몸속에 있는 면역세포가 병원균으로 판단되는(정말 대충 판단하지만) 침입세력과 싸우는 증상이며, 그렇기에 에너지들이 모두 그곳에 집중됩니다.

 

그러니 감기에 걸리면 몸은 우리를 움직이지 말고 쉬도록 유도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여러 가지 약물을 먹어서 그 증상을 완화시키죠. 왜냐면 일을 해야 하는 경우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불편하고 질환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며, 보았다고 다 본 것도 아니다.

 

우리의 뇌 안에 보면 '시상'이라는 작은 조직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신경의 허브역할을 합니다. 즉 몸으로부터 전달되는 시각, 청각, 미각, 촉각 정보를 받아서 뇌에 전달하고, 뇌에서 일어나는 신경명령을 받아서 각각의 근육세포로 전달하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기관입니다.

 

그런데 후각은 이 시상을 거치지 않고 바로 뇌로 전달됩니다. 그만큼 냄새를 통해서 즉각적인 위험을 인식하기 위한 진화론적인 판단이죠. 생화학적인 인공 독소들이 나오기 이전에는 거의 냄새를 통해서 신체에 독이 될 것들을 판단 가능했을 겁니다.

 

더구나 눈이 가진 일면적 정보 인식이 아닌 다면적 인지가 가능했으니, 후각 정보는 시상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구조를 가진 것이죠.

 

실제로 고구마의 썩은 부위는 색깔보다 냄새로 판단하는 게 가장 정확했습니다. 멀쩡해 보여도 썩은 냄새가 느껴졌고, 약간의 시간이 지나니 빛깔로도 나타났죠.

 

저는 이게 사회구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개인의 삶에도 같은 이해를 적용가능한 것 같습니다.

 

4. 드러난 것보다 더 깊이 도려내라.

당신이 썩은 고구마를 찾았다면, 그냥 그 고구마를 버릴 수 없다면, 드러난 것보다 더 도려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아깝다며 놔두면, 결국 썩은 고구마를 먹게 될 것입니다.

 

먹어봐야 똥인지 된장인지 아는 게 인간입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후각을 활용하십시오. 당신의 양심이나, 당신의 직감을 믿으십시오. 의외로 당신이 옳다고 말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 든다면, 하지 않는 게 좋을 지도 모릅니다.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이 든다면, 기억하세요. 당신에게 기회라고 들먹이는 사람은 99% 사기꾼일 확률이 큽니다.

 

스스로의 확신도 믿지 마십시오. 의심하십시오. 그리고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믿으십시오. 당신의 배는 아플 것이고, 그러다 설사라는 방식으로 그 독을 쏟아낼 것임을.

 

그리고 믿으십시요. 어쩌면 죽을 수 있음을. 확실한 건 태어난 당신의 종착역은 죽음입니다. 그러니 아쉬워마십시오.

 

하지만, 제가 강조드리고 싶은 건 더 깊이 도려내라는 말입니다. 당신의 '습'이 당신입니다.

24년 11월 08일 고구마 먹다가 별 희한한 생각을 다 하는 지구별 지구인의 썩은 고구마라도 먹는 방법이었습니다..